투자자 신뢰 상실한 ‘코인’… 금융시장 진출 구상도 ‘빨간불’
[세계일보] 투자자 신뢰 상실한 ‘코인’… 금융시장 진출 구상도 ‘빨간불’ [세계는 지금]
가상화폐 거래소 FTX 파산 한 달
FTX사태로 업계 지급능력 문제 대두
가상화폐 거래 불투명성도 피해 키워
공식 안전망 없어 고객 불안감은 여전
코인, 금융상품으로 인정받으려 노력
뱅크먼프리드, 7210만弗 기부금 뿌려
소관부처 CFTC, 입장 바꿔 회의감 보여
일각 FTX로 탈중앙화 촉진 전망 내놔
거래소 이용 않고 개인끼리 사고팔아
120만명이 이용하던 세계 2위 가상화폐 거래소 FTX(Future Exchange)의 파산이 11일 한 달을 맞는다. FTX가 밝힌 채무자만 10만명, 추산 채무액은 최대 500억달러(약 65조원)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가상화폐 업계 큰손의 초고속 몰락에 시장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사태는 현재진행형. 고객 대출금 75억달러(약 9조7500억원)가 넘는 가상화폐 대출업체 블록파이는 FTX 붕괴 여파로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FTX 그룹 내 130개 회사가 함께 파산 절차에 들어가면서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사진=AP연합뉴스◆안전망 없는 고질적 불투명성에 문제 제기
5월 루나코인 폭락 사태에 이어 FTX까지 몰락하자 가상화폐 업계의 근본적 구조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늘고 있다. 투자전문사이트 인베스팅닷컴은 “(이번 사태에서) 위험성이 큰 가상화폐 업계에 대한 투자자의 심각한 신뢰 상실이 가장 심한 문제”라며 “업계의 지급 능력도 그대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 이번 사태는 2001년 대규모 회계부정을 일으킨 엔론 사태와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왔던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합친 정도의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업계의 고질적 병폐인 투명성 부족으로 추산 가능한 피해 범위도 명확하지 않고 동일한 사태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후폭풍을 가늠할 수 없는 상태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보고서에서 “가상화폐는 전통적 금융시장과 달리 예금 보험이나 당국 등의 공식 안전망(backstop)이 없다는 것이 중요한 차이점”이라며 “가상화폐 업계는 대체로 규제가 없으며, 고객을 보호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번 사태를 투명성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캐나다 신용평가사 DBRS는 보고서에서 “최소한 소액 투자자에게는 가상화폐 투자의 높은 위험성에 대한 명확한 경고가 될 것”이라고 했다.
◆금융시장 진출 구상도 빨간불
당국의 법적 규제를 받아 제도권 금융시장에 정식 진출하려던 가상화폐 시장의 계획은 당분간 동력을 상실할 전망이다. 이번 사태의 핵심 인물인 샘 뱅크먼프리드 전 FTX 최고경영자(CEO)는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인정받기 위해 워싱턴 정계에 막대한 기부금을 뿌려 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정치후원금을 추적하는 비영리단체 책임정치센터(CRP)를 인용해 최근 18개월간 FTX의 정치후원금이 7210만달러(약 937억3000만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서는 가상화폐 규제를 두고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거래위원회(CFTC)가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 가상화폐가 증권이냐, 상품이냐 해석에 따라 소관 부처가 달라진다. 뱅크먼프리드는 가상화폐에 비교적 우호적인 CFTC 관련 정치인에게 막대한 로비를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CFTC는 FTX 파산 후 가상화폐 업계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내고 있다. 로스틴 베넘 CFTC 위원장이 최근 비공개 행사에서 “비트코인만이 상품으로 분류할 수 있는 유일한 가상화폐”라며 “가상화폐는 투기 이상으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고 미국 경제전문매체 포천이 전했다. FTX 사태 전 가상화폐 규제 권한을 의회에 요청하고 있다던 입장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가상화폐 규제권을 SEC에 넘겨줄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조셉 에드워드 시큐리타이즈캐피털 분석가는 “(비트코인 등) 가장 기본적인 코인을 제외한 모든 가상화폐는 시장 접근 측면에서 몇 년은 후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샘 뱅크먼프리드 전 FTX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1월 3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가 뉴욕에서 주최한 딜북콘퍼런스에 화상으로 참여해 인터뷰 도중 고개를 숙이고 있다. 뱅크먼프리드는 FTX 파산 사태 이후 처음으로 이날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뉴욕=AFP연합뉴스◆탈중앙화 촉진 계기 전망도
FTX 사태가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가상화폐의 가장 큰 특징인 탈중앙화를 실현하는 긍정적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가상화폐는 전통화폐와 달리 중앙은행 통제 없이 누구나 채굴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발행(발권)의 탈중앙화가 주요 특징이다. 그런데 거래에서는 탈중앙화된 방식이 아니라 중앙화된 방식이 보편적 형태로 자리를 잡으면서 전통적 금융자산과 차이점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가상화폐 거래의 중앙화는 주식시장에서처럼 이용자가 거래소(CEX)에 자산을 맡겨 사고파는 개념이다. 탈중앙화 거래는 중고장터 플랫폼에서처럼 CEX에 자산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개인끼리 온라인지갑을 통해 거래하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CEX는 큰손인 해당 CEO 의중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아 투명성 부족의 주원인으로 지목됐다. FTX 붕괴도 CEX의 이런 약점이 표출된 사례로 볼 수 있다. 앞으로 탈중앙화 거래 플랫폼이 각광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가상화폐 전문매체 코인텔레그래프는 “투자자들은 이제 FTX 같은 CEX에 자금을 보관하는 것이 얼마나 안전한지 의문을 제기하고 확인되지 않은 의사결정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이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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